말콤 목사님을 추모하면서

Author
관리자7
Date
2025-06-02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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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목사님을 만난 지 벌써 16년이 지났습니다.
교회 건축 기간 동안 오후에 Church of Apostles 교회 건물을 빌려서 예배드렸는데
그 때 현관에서 늘 반갑게 맞아주던 분이 말콤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교회의 예배가 은혜스럽다며 한국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가끔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건물을 완공하고 이사를 하면서 우리 영어권 자녀들의 교육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저희 교회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목양의 가족이 되어 청소년부, 영어권 케어링등 여러 사역을 힘써 섬기셨습니다.
그래서 말콤 목사님은 우리 자녀들에게 늘 따뜻한 엉클 (uncle) 로 할아버지 (grandpa) 로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쳐다보시고 자라나서 대학교를 지원할 때나
직장을 찾을 때 추천서는 항상 말콤 목사님의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장에 들어가면 자기 자녀, 손주가 들어간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저는 말콤 목사님과 두 번 우크라이나를 방문해서 현지 교인들을 섬겼습니다.
말콤 목사님은 벌써 수십 번 그곳을 방문하여 수십 명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었고
미국교회와 우크라이나 교회를 이어주는 든든한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자 너무 마음아파 하셨습니다.

말콤 목사님의 마음은 늘 타민족에게 있었습니다.
워싱톤에서도 우리 교회 뿐 아니라 몽고인 교회, 중국인 교회, 인도인 교회를 섬기셨고
청소년 선교단체인 Joshua Project를 섬기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역들보다도 저의 마음에 남는 것은 목사님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교회 건축을 마치고 입당해서 무척 어려웠을 때부터 늘 옆에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탁하는 일은 하나도 마다하지 않고 늘 기쁜 마음으로 들어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제가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공항에 라이드를 해 주었고 조금이라도
수고비를 드리려고 하면 가족끼리 그런 것 받는 것 아니라고 하면서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그분은 정말 우리 목양교회 모든 교인들을 가족처럼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만나면 우리 목양식구들 한 분 한 분 이야기를 하면서 참으로 좋아하셨습니다.
최근까지도 아픈 몸으로 교회 어르신들의 라이드를 하면서도 항상 라이드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웃으셨습니다.

말콤 목사님의 삶은 사랑, 섬김, 돌봄 이런 단어로 요약이 됩니다.
이렇게 좋은 분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자 저의 마음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소천하기 전날 토요일 오전에 병실을 방문했을 때 깊이 잠들어 있어서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그것이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주일에 소천 소식을 듣고 병실에 들어섰을 때 여러 민족의 성도들이 모여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며 말콤 목사님을 추모했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 속에 이 땅을 떠났습니다.
이제 사랑하는 말콤 목사님을 다시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곧 천국에서 다시 기쁜 얼굴로 만날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이 땅에 잠시 머무는 동안 말콤 목사님이 남기신
아름다운 삶을 추억하면서 그분의 발걸음을 쫓아 살겠습니다.

(이 글은 워싱턴 목양교회를 담임으로 시무하시는 안성식 목사님의 글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