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야곱이 집에서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때 마침 사냥에서 돌아온 형 에서가 야곱에게 배고파 죽겠으니 팥죽을 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야곱은 거절했습니다.
그리고는 형의 장자권을 요구했습니다.
형 에서는 배고파 죽겠는데 장자권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하면서 맹세한 후에 동생에게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히브리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12:16)
너무 아까운 거래입니다.
에서가 영적인 가치를 보는 눈이 있었다면 그깟 팥죽 한 그릇에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오는 장자의 축복을 받는 장자권을 그리 쉽게 넘겨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성도들도 에서와 같은 선택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려고 너무 쉽게 세상과 타협합니다.
육신의 만족이 영혼의 만족보다 우선되어서 육신의 것을 위해 쉽게 신앙을 버립니다.
에서가 장자권을 내주고 받은 팥죽이 잠시의 배고픔을 채워주었는지 모르지만 대신 그는 대대로
영적가문을 이어갈 장자의 명분을 잃어 버렸고 그의 영혼은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파멸 당했습니다.
지금은 가치가 극도로 혼동되는 시대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잠시동안의 육적 만족보다 살면서 영생을 주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 글은 워싱턴 목양교회를 담임으로 시무하시는 안성식 목사님의 글을 옮겨 놓은 것입니다.)